Note.3
클래식 악기와 오케스트라
Question
오케스트라에 반드시 지휘자가 필요할까?
"사실 오케스트라에 지휘자는 없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박자에 맞추어 손흔드는 거 누구는 못해요?"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온 적이 있어요.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거예요. 그쵸?
지휘자가 하는 일이 '박자에 맞추어 손 흔드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맞는 말일 수도 있어요.
지휘자는 음악가 가운데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의 악기는 오케스트라 이구요, 그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사람이 바로 지휘자 이지요.
우리는 지휘자가 무대위에서 박자에 맞추어 지휘하는 모습만 보지만, 사실 지휘자의 역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휘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대 뒤에서 오케스트라를 훈련하는 일이지요.
지휘자는 연주할 곡의 악보를 꼼꼼하게 읽고 나름대로 음악의 윤곽을 그린 다음, 리허설을 통해 리듬과 악센트, 밸런스, 색채라는 옷을 입힙니다.
이 과정에서 지휘자의 해석이 가미되지요.
같은 곡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듯 같은 오케스트라라 해도 지휘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집니다.
지휘자는 템포는 어떻게 설정하고 박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 프레이즈를 어떻게 처리하고 소리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나갈 것인지 등 연주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여기에서 지휘자에게는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됩니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지휘자에게 복종해야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요!
오케스트라가 그의 악기이고, 지휘자에게는 자신의 악기를 마음대로 요리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휘자의 권위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볼까 하는데요!!
한 성악가가 모차르트 미사곡의 리허설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지휘자가 템포를 너무 느리게 잡는 바람에 숨이 모자라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고 하늘 같은 지휘자에게 감히 템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없었던 그는 묘안을 짜냈습니다.
다음날, 리허설에서 그 성악가는 지휘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에스트로, 제가 어젯밤 꿈에 모차르트를 만났는데, 이 곡은 조금 빠르게 연주하라고 하던데요"
그 말에 지휘자는 '모차르트가 그랫다니 할 수 없지'하면서 템포를 조금 빠르게 잡아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이번에는 지휘자가 성악가를 불러 말했어요.
"나도 어젯밤에 꿈에 모차르트를 만났는데, 모차르트가 당신을 전혀 모른다던데..."
지휘자가 얼마나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 입니다.
연습할 때,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이에 맞게 연주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를 조율해야 합니다.
"그 부분은 좀 더 느리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 대목에서 클라리넷이 너무 늦게 나오는 것 같아요"
"여긴 갑자기 폭발하듯이 나와야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의도를 이야기 해야합니다.
이때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지휘자도 있습니다.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베토벤 <교향곡 4번>을 연습하면서, 베토벤이 테레제라는 여인을 사랑했을 때 쓴 곡이기 때문에 2악장 시작부분에서 바이올린이 '테레제, 테레제'라고 부르는 듯 연주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지휘자는 '그 대목은 오렌지색으로 연주해주세요'라는 식으로 요구하기도 하지요.
이런말을 들었을 때 단원들은 어떤 기분일까요?
지휘자는 그 누구보다 음악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훌륭한 지휘자가 될 수 없어요.
화성학, 대위법, 청음, 시창, 음악분석, 음악사, 관현악법, 악기론 등 음악의 전 분야에 능통해야 하고,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개의 악기가 동시에 울리는 동안에도 어떤 특정 악기의 오류를 단번에 알아낼 수 있을 만큼 귀가 예리해야 합니다.
이렇듯 전지전능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바로 지휘자이지요.
그러나 음악적으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지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휘자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능력은 오케스트라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는 통솔력이지요.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시키고, 그 의도에 맞게 움직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였어요! 악단의 규모도 작았고, 음악도 그리 변화무쌍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지휘자 없이도 연주가 가능했어요. 그러나 음악이 더 복잡해지고, 악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지요.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휘자가 그저 박자에 맞추어 손을 흔드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지휘자는 수십명이나 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손짓과 몸짓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요.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음악이 시작되고 끝나며 정확한 템포를 잡아주고, 악기가 나와야 할 곳을 알려주며, 다양한 제스처를 통해 음악에 표정을 입힘니다.
그런데 전설적이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광경을 본사람들은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 할 것입니다.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오케스트라에 신경을 쓰기나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눈을 감은채 지휘를 하거나, 설사 눈을 뜨고 있다 해도 도대체 단원들을 보는것 같지 않고 자기도취에 빠져 다른 것은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볼 수 도 있는데요.
이는 사실 지휘자로서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에요!
영상속에서 카라얀은 지휘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지휘하는 모습이 화면에 멋있게 찍히는 데 더 집중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아마 카라얀은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이미 리허설 시간에 단원들에게 충분히 전달 했을 것이예요!!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는 리허설 시간에 말한대로 알아서 연주하라는 식으로 지휘하는 모습에만 신경을 썼을 수도 있지요!
카라얀에게 있어 지휘는 하나의 퍼포먼스이기도 했어요.
그가 지휘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했지요. 지휘자가 무대 뒤에서 오케스트라를 연습시킬 때에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과 사운드를 끌어내는 데에만 신경을 쓰면되지만 지휘를 하기 위해 무대에 서면 사정이 달라지고 관객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있기때문이예요. 지휘자는 객석에 앉아 자기 뒤통수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을 생각해야해요. 말하자면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무언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지휘자 중에는 무미건조하게 박자만 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려한 제스처를 쓰는 사람도 있어요. 물론 제스처와 실력이 늘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무미건조한 지휘보다는 역동적인 지휘가 좋은 것이 사실이지요.
무대위에서 지휘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는
'음악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출처 : <<알고 싶은 클래식 듣고 싶은 클래식 클래식 노트 - 진회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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