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4
클래식 악기와 오케스트라
Question
팀파니스트가 한가하다?
여기 허무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한번 다같이 읽어볼까요?
『그날 아침, 그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연습실로 들어섰다. 교향악단의 팀파니스트로 취직하고 나서 처음으로 맞는 리허설이었다. 연습할 곡은 4악장짜리 교향곡이었는데, 팀파니는 4악장의 첫 대목에 아주 잠깐 나온다. 비록 나오는 시간은 짧지만, 팀파니스트로서 관객에게 강렬하게 어필할 수 있는 곡이기 때문에 남다른 각오를 안고 리허설에 임했다.
오케스트라가 1, 2, 3악장을 연습하는 동안, 그는 자리에 앉아 지루하게 기다렸다.
그러고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4악장이 시작되었다.
그는 바짝 긴장한 채 마디를 세면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드디어 등장할 차례가 되어 팀파니를 치려는 순간, 지휘자가 돌연 연습을 중단시켰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니다."』
연주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은 팀파니스트들의 애환을 그린 유머네요.
물론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다는 건 다른 타악기 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타악기 주자는 심벌즈, 트라이앵글, 공, 작은북, 큰북, 실로폰, 마림바, 클로켄슈필, 비브라폰, 튜불라 벨 등 여러 타악기 중 몇 가지를 동시에 다루기 때문에, 연주할 때 팀파니스트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지요.
팀파니스트는 오로지 팀파니 하나만 연주합니다. 그러니 팀파니가 적게 나오는 곡에서는 지루할 수 있어요.
타악기 전공자들은 대학에서 팀파니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타악기를 다 공부합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정할 때는 타악기 주자와 팀파니스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지요. 세상의 모든 타악기를 다 연주할 것인가 아니면 오로지 팀파니 하나에만 집중할 것인가.
타악기 전공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타악기에는 음정 없는 타악기와 음정 있는 타악기가 있습니다.
흔히 팀파니 같은 북 계열의 악기는 음정이 없는 악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아요! 팀파니는 음정이 있는 타악기 입니다.
물론 구조상의 한계 때문에 실로폰이나 마림바처럼 다양한 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는 없고, 낼 수 있는 음도 한정되어 있어요! 그러나 큰북이나 작은북과 달리 음정이 있기 때문에, 음악의 리듬은 물론 화성적인 면까지 담당하는 악기가 바로 팀파니랍니다.
팀파니스트는 오케스트라에서 화음의 저변을 받쳐주고, 리듬을 통해 음악에 뼈대를 심는 역할을 합니다. 흔히 팀파니스트를 제2의 지휘자라고도 하지요. 팁파니스트가 템포를 결정하고, 리듬이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도록 뒷받침 역할을 하지 때문이예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만약 팀파니가 빠진다면 음악은 뼈대와 받침 없이 공중에 붕 뜨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런 팀파니스트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오케스트라 뒷자리에 한참 앉아 있다가 잠깐씩 일어나 둥둥 소리를 내는 연주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연주자의 동작을 급여 계산 기준으로 삼는다면, 바이올리니스트는 활 한번 그을 때마다 '십 원'이고, 팀파니스트는 팀파니 한 번 칠 때마다 '만 원'일 것이라는 농담도 있지요? 각종 SNS에서 떠다니는 동영상도 볼 수 있었을 텐데요~ 이 말처럼 시종일관 소리를 내는 현악기나 그 밖의 다른 악기에 비해 팀파니 연주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팀파니스트는 심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쉽지요.
그러나 실제로 팀파니스트들도 많이 바쁘답니다!
베토벤 이후로 작곡가들이 음악에 팀파니를 자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고전주의 후기와 낭만주의를 거쳐 20세기로 들어오면 팀파니스트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요.
그런데 다른 악기와는 달리 팀파니는 연주할 때도 바쁘지만, 연주하지 않을 때도 바쁘답니다! 왜일까요?? 바로 조율을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앞서 말했듯 팀파니는 음정이 있는 악기입니디ㅏ.
페달로 북면을 팽팽하게 당기거나 풀어서 음높이를 조절하게 됩니다.
북면이 팽팽하면 음이 높아지고, 느슨하면 음이 낮아지지요.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손으로 나사를 조여 음높이를 조율했어요. 때문에 조율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렸지요. 그래서 작고가들은 팀파니가 들어가는 곡을 작곡할 때, 연주 도중 팀파니스트가 악기를 조율할 시간을 감안해서 곡을 써야만 했어요. 이러한 불편 때문에 작곡가들이 음악에 팀파니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손이 아닌 페달로 음높이를 조율하는 장치가 개발 되었습니다. 요즘은 자동으로 음높이를 알려주는 계측기까지 생겨 팀파니스트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답니다!
그런데 팀파니스트들은 연주 도중에 조율을 할까요?
연주 전에 미리 조율해놓으면 편할텐데 말이죠.
팀파니는 보통 각기 다른 사이즈를 가진 네 개가 한세트를 이룹니다. 즉 네개의 음만을 낼 수 있다는 말이지요. 물론 여러 세트의 팀파니를 사용하면 이런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악기를 무대 위에서 여러 대 들여놓으면 곤란하답니다. 공간적으로도 드렇고, 팀파니스트의 행동 반경을 감안해도 그렇습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팀파니는 연주 도중 필요에 따라 음높이를 조율해 사용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다른 악기들이 연주하고 있는 동안, 팀파니스트가 손가락으로 살짝 북면을 두드리며 얼굴을 바짝 갖다 대는 광경을 본 적 있나요?
바로 조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주가 계속 되고 있기 때문에 절대 큰 소리를 내면 안되거든요.
관객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북면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는 것이지요.
팀파니스트는 귀가 매우 예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는 E장조의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팀파니는 Eb으로 조율해야 하는 식이기 때문에, 음감이 좋지 않으면 상당히 힘들답니다.
진행이 변화무쌍한 음악에서는 더 힘들어져요..!
조바꿈이 빈번한 곡에서는 팀파니스트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죠.
조가 바뀔 때마다 쉬지 않고 계속 조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대목 연주한 다음 조율하고, 또 한 대목 연주한 다음 조율하고 이렇게 변화 무쌍한 곡에서는 연주할 때보다 연주하지 않을 때가 더 바쁜 경우도 있습니다.
팀파니스트가 음높이만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북채도 그때그때 바꾸어야 합니다. 팀파니스트 옆에는 보통 열 개가 넘는 북채가 있는데요 북채의 머리 부분은 플란넬이나 나무, 코르크, 스폰지 등 다양한 재질로 이루어지는데, 한 곡에서도 음악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북채를 바꾸어서 씁니다.
굵고 풍성한 소리를 내고 싶을 때는 부드럽고 큰 북채를,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싶을 때는 딱딱하고 작은 북채를 쓰지요. 이렇게 음색에 변화를 주게 된답니다.
이처럼 팀파니스트는 쉴 틈이 없습니다.
연주를 하지 않을 때에도 끊임없이 음높이를 조율하고 북채를 골라야 하니까요.
체력도 좋아야 해요. 연주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엄청나기 때문에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팀파니스트는 결코 한가한 직업이 아닙니다.
출처 : <<알고 싶은 클래식 듣고 싶은 클래식 - 진회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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