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13
오페라가 여는 세상
Question
오페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오페라는 르네상스 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탄생했습니다.
당시 피렌체에는 인문학자, 작곡가, 시안, 화가, 예술 애호가로 구성된 카메라타camerata라는 그룹이 있었지요.
'카메라타'는 '방'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카메라'에서 나왔답니다.
모임의 일원인 작곡가 카치니가 <에우리디체>라는 작품을 후원자인 바르디 백작에게 헌정하면서,
악보 표지에 '카메라타의 훌륭한 시간들을 생각하며'라고 적어 넣은 데서 비롯되었지요.
카메라타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5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1월 14일 바르디 백작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주요 구성원은 후원자인 지오반니 바르디 백작을 비롯해 작곡가 줄리오 카치니, 귀족이자 아마추어 작곡가인 피에트로 스트로치,
류트 주자이자 작곡가, 음악이론가인 빈첸초 갈릴레이(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
역자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지롤라모 메이, 시인 오타비오 리누치니였습니다.
그 외에 작곡가 에밀리오 카발리에리,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크리스토파노 발베치,
작곡가이자 외교관인 알렉산드로 스트리지오, 시인 가브리엘로 키아브레라,
시인이자 희곡작가이자 외교관인 지오반니 바티스타 구아리니 등도 자주 참석했지요.
피렌체에서 내로라하는 예술가와 귀족, 학자, 작가들이 다 모인 셈이에요.
카메라타 멤버들은 모두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당대의 음악이 너무 타락했다는 것이지요.
당시에는 여러 성부를 한 다성 성악곡이 크게 유행했는데, 그들은 내용을 진솔하게 전달하기보다
외형적인 화려함에 치우친 다성음악에 회의를 품게 되었어요.
따라서 대안으로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양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지요.
이런 생각은 카메라타가 생기기 이전부터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답니다.
카메라타는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모임이었고, 그 답을 고대 그리스비극의 재현에서 찾았습니다.
카메라타의 일원인 지롤라모 메이는 고대 그리스 연주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역사학자인데요.
그는 그리스비극이 말로만 하는 '대사'가 아니라 운율이 있는 '노래'에 가까운 형태로 공연되었으리라고 주장했지요.
그리스비극에는 노래와 품을 담당하는 코러스가 있는데, 비단 코러스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대사도 노래와 비슷한 방식으로 공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에요.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카메라타 사람들은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고자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레치타티보라는 양식을 창안하게 됩니다.
레치타티보는 '말하듯이 하는 노래'를 가리키는데요.
말의 리듬과 강세를 자연스럽게 살려 노래하는 이 레치타티보가 후에 오페라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었답니다.
카메라타의 일원인 빈첸초 갈릴레이는 재능이 뛰어난 마드리갈 작곡가였습니다.
일찍이 <<고대와 현대음악의 대화>>라는 책에서
'모든시구에는 그것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단 하나의 선율과 리듬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그는,
1582년 단테의 <<신곡>>중 <지옥>현에 나오는 <우골리노의 비가>를 레치타티보 양식으로 작곡했습니다.
같은 모임의 작곡가 카치니 역시 성악곡 몇 편을 같은 방식으로 작곡하였지요.
카메라타 사람들은 노래에서 '가사의 정확한 전달'을 무엇보다 중시여겼습니다.
그들은 가사의 의미가 특히 중요한 극음악에서,
깊이 있는 내용의 전달보다 화려한 과시용으로 전락한 다성음악을 사용하는데 회의를 품었지요.
다성음악에서는 여러 성부가 동시에 다른 리듬과 선율을 노래합니다.
때문에 가사를 정확하게 알아듣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카메라타 사람들은 극음악에 적합한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게 되었는데요.
이 새로운 양식을 '모노디monody'라고 합니다.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모노디라는 말은 '혼자 노래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다성음악과 달리 모노디는 혼자 노래하며, 음악보다 말을 중시하지요.
반주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간단한 몇 개의 화음으로 축소되어 있답니다.
노래는 가사의 자연스러운 강세와 흐름을 따르는 자유로운 리듬으로 구성되는데, 바로 말과 노래의 중간적인 성격을 띤 레치타티보입니다.
카메라타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이런 방식으로 공연되었으리라고 믿었어요.
1597년, 카메라타의 후원자인 바르디 백작의 궁정에서 그리스신화를 소재로 한 모노디 양식의 음악극 <다프네>가 공연됩니다.
이 작품은 작곡가 페리와 시인 리누치니가 손잡고 만들었는데, 오늘날 이것을 최초의 오페라로 보고있지요.
그러나 이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는 그 후 악보가 유실되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답니다.
악보가 전해지는 최초의 오페라는 1600년,
역시 작곡가 페리와 시인 리누치니가 프랑스의 앙리 4세와 마리아 데메디치의 결혼식을 위해서 쓴 <에우리디체>입니다.
<에우리디체>를 비롯한 초기 오페라들은 모노디 양식에 의한 아리오소(레치타티보에 서정성을 가미한, 체리타티보와 아리아의 중간적인 성격)로 이루어져 있었답니다.
반주는 비올라 다 감바, 류트, 하프시코드나 오르간을 포함한 통주저음이 맡았지요.
카메라타 작곡가들에 의해 시작된 오페라는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17세기로 들어서면서 작곡가들이 앞다투어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이 시기의 오페라 작곡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탈리아 베니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몬테베르디입니다.
오페라는 당시 사람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높았고,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는 몬테베르디의 공이 컸어요.
갓 태어난 오페라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지요.
몬테베르디는 1607년 오페라 <오르페오>를 작곡했는데, 오늘날 이를 근대 오페라의 효시라고 본답니다.
1597년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가 만들어진 이후 몇 편의 오페라가 나왔지만,
근대적인 개념의 오페라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가 처음이였어요.
이 오페라에서 몬테베르디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변화가 풍부한 관현악을 구사했구요,
이후에도 <포페아의 대관><율리시스의 귀환>등 근대 개념에 가까운 진보적인 오페라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지요.
카메라타 그룹이 오페라를 처음 만들었지만, 실질적으로 정착시킨 인물은 몬테베르디입니다.
고대 고전의 부활을 꿈꾸었던 르네상스 후반기에 처음 탄생한 오페라는
귀족들의 인문주의 취향에 따라 상당히 오랫동안 신화의 세계를 그리는데 주력했어요.
신화중에서는 음악의 오르페오의 이야기가 가장 인기가 높았어요.
오페라의 창시자로 알려진 페리와 카치니의 작품을 비롯, 이 무렵 오르페오를 다룬 오페라가 무려 서른 편이나 만들어졌지요.
초기 오페라에서 오르페오가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랍니다.
출처 : <<알고싶은 클래식 듣고 싶은 클래식 : 클래식 노트 - 진회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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